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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한 마리 내 안에 살았지 (후안 헬만, 성초림 옮김)도서 리뷰 2024. 7. 27. 23:27
FEALAC RUM 독서마라톤 여덟 번째 나라는 "아르헨티나"이다.
어느 순간부터 아르헨티나는 축구, 리오넬 메시로 더 친근한 나라이다.
생각해 보니,
시나 동시에 관심이 있지만,
다른 나라의 시를 읽어볼 생각을 안 했었다. 왜지?
이 책은 아르헨티나의 시인 후안 헬만의 시를 엮은 시선집이다. 조국 아르헨티나의 군사 통치 압제하에서의 상실과 고통을 노래한다. '언어의 음악성과 리듬이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받는 저자의 <묘비명>, <도둑>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일제 통치하에서의 상실을 경험한 우리나라 시와 견주어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 작가 소개
- 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청년 공산당에 가입
- 이후 '딱딱한 빵'이라는 동인을 결성, 시낭송회를 열며 시를 쓰기 시작
- 13년 동안 숱한 나라들을 전전하며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에 저항함
- 파블로 네루다 문학상, 세르반테스 문학상을 수상
▶ 작가의 시
1950년대 네루다 풍의 감미로운 전통 서정시가 남미대륙을 평정하던 시절, 일상의 언어로 저항을 말하는 후안 헬만의 소위 비판적 사실주의는 중남미 시에 새로운 물결을 가져온다. 물론 저항 시인, 사회참여 시인인 점을 감안하면 다분히 공격적인 그의 시가 어색할 것도 없지만 그는 저항의 시대가 아닌 평화의 시대에도 당시의 서정시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어느 실직자의 기도>
아버지,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와 보시오. 할머니, 그 가엾은 이가
가르쳐 준 기도는 잊어버렸소, 그분은
이제 편히 쉬신다오,
빨래도 청소도 안 해도 되고, 종일
입을 거리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밤새워 애닯게 애닯게
기도할 일도, 아버지에게 애원하고, 슬며시 투덜거릴 일도 없소.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와 보시오, 하느님이 있다면, 그렇다면
내려와 보시오.
난 이 모퉁이에서 굶어 죽을 지경이오,
뭣 땜에 태어났는지 도통 모르겠고,
거절당한 손을 바라보고 있소,
일이 없어요 일이,
좀 내려오시오, 와 보시오,
내 꼴을, 이 찢어진 신발을,
이 고뇌, 이 텅 빈 창자,
내 한 입 채울 빵 한 쪽 없는 이 도시, 온몸을
파고드는 신열,
이렇게 비를 맞으며
잠들어, 추위에 떨고 쫓기니
정말 알 수가 없소, 아버지, 내려와 보시오,
내 영혼을 어루만지고, 내 마음을
들여다봐 주시오,
난 도적질도, 살인도 하지 않았고, 그저 어린아이였을 뿐
그런데도 날 때리고 또 때리고
정말이지 알 수가 없소, 아버지, 정말 하느님이 있다면,
내려와 보시오, 내 안에서
체념을 찾지만 그런 건 없소, 이 분노를 움켜쥐고,
날을 세워 나도 때려 보렵니다.
목구멍에 피가 차오르도록 소리칠 테요,
더 이상은 못하겠으니까, 나도 창자가 있고
나도 사람이니까,
내려와 보시오, 당신의 피조물을
어떻게들 만들어 버렸습니까, 아버지?
거리에서 돌멩이를 씹는
성난 짐승 아니오? p.12
▶ 꿈 많은 작가
연간 1,000퍼센트 이상의 인플레이션,
10,000페소짜리 지폐를 찍어 내기 위해 몇 배의 돈이 들어갔기에,
돌아오는 지폐에다 0을 덧붙여 다시 유통시키던 시대,
'이빨을 위한 빵도 없는 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이 시는 적나라하게 직설한다. p.118
시적 자아가 하느님에게 땅으로 내려와 자신의 자포자기 상황을 돌봐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하느님을 부르며 기도로 시작하지만, 점점 분노에 찬 외침에 가깝다. "일상의 평범한 언어가 어떻게 시적 떨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의 시답게, 어려운 표현은 찾아볼 수 없다. 쉬운 단어의 반복과 구어체,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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