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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이수정 옮김)도서 리뷰 2024. 7. 22. 00:19
FEALAC RUN 독서마라톤 일곱 번째 나라는 "콜롬비아"이다.
"외국인 소설가의 한국 체험기"
콜롬비아인의 시각에서 본 한국이라, 정말 궁금했다.
제목부터 구미가 당겼다.
한편,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보다 어쩌면 한국을 더 잘 알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앞섰다. 제3자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말이다. 어느 한자리에 오래 머물다 보면 익숙해지고 동화되어 다른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한 호기심이 인정과 수긍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작가 소개
-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태어났으며 로스안데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
- 저명한 영국 문학잡지 <그랜타>의 2010년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작가 22인' 중 1인으로 선정
- 「한국에 삽니다 Corea: apuntes desde la cuerda floja」로 2016년 콜롬비아 도서관 소설문학상을 받음
-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음
- 저서
「나를 구해줘, 조 루이스」: 2007년, 첫 장편소설
「네온사인 공동묘지」: 한국전쟁 콜롬비아 참전 용사를 다룸
「최저임금」: 콜롬비아 메데진의 공장에서 6개월간 일한 경험을 담은 르포르타주
▶ 출판사 서평
"낯선 곳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내부,
타인의 내부를 통해 바라보는 나와 우리들의 외부,
이 책은 그 경계에 대한 이야기다." - 김인숙(소설가) -
"장르의 경계가 사라진,
우리 시대 문학을 대변하는,
탁월한 문학적 성취" - 콜롬비아 소설문학상 심사위원장 -
콜롬비아 출신 작가 안드레스 솔라노가 모국과 지리적, 문화적으로 정반대에 있는 한국에서의 1년간의 생활을 일기 형식으로 담아내 2016년 콜롬비아 소설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한국에 삽니다 Corea: apuntes desde la cuerda floja」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의 좌출우돌 체험기가 아니다. 한국말이 유창하고 김치를 좋아하는 외국인 사위의 소소한 일기도 아니며, 한국 사회가 간과하는 추한 면모를 비판하는 르포르타주도 아니다. 소설가 김인숙의 추천사처럼 경계에 선 사람이 그 경계를 직시하는 이야기다. 책의 원제 '흔들리는 외줄 위에서 써 내려간 메모들'이란 뜻이다. 추락하지 않기 위해 출렁이며 줄을 타는 것처럼 존재가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태에서 쓴 글을 의미한다.
경계에서 흔들리는 건 그 뿐만이 아니요, 우리 모두 어떤 의미에서 항상 경계를 직시하고자 하는 이방인이기에 '한국에 삽니다'라는, 이곳에 더 적합한 제목으로 안착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여기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꿈 많은 작가
"일주일에 두세 번, 그 집에서 나온 맥도날드 봉투를 집 앞 쓰레기 더미에서 봤을 뿐이지만요. 그 옆에는 목련 나무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없습니다. 서울에서의 첫봄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그 나무를 잘라버린 사람에게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저주를 퍼붓습니다. 눈을 감으면 꽃향기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골목을 뒤덮은 꽃잎이 떠오릅니다." p.4
한국어판 서문에 나오는 부분이다. "목련 나무를 잘라버린 사람에게 지금 이 자리를 빌려 저주를 퍼붓는다."는 부분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앞으로 이 책의 내용이 얼마나 솔직하고 노골적으로 전개될지에 대한 호기심도 살짝 생겼다. 서울에서의 첫봄을 만끽하게 해주었던 추억의 나무였으니 저자는 그만큼 아쉬웠겠지. 한국에서 작가로 살겠다는 결심이 흔들릴 때마다 발버둥 쳤던 작가에게 첫봄의 기억, 한국에서의 정을 붙이게 해 줬던 목련 나무였으리라.
"한국에서 발견한 이 집단은 자신들만의 규칙과 자신들만의 차림새와 자신들만의 욕설을 고수한다. 아줌마가 되는 것이란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해남에서 목격한 세 명의 승객들은 아줌마로서의 자격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바람막이와 둥그런 고무 굽이 피곤을 줄여주는 신발, 짧은 파마머리, 거기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한국에서만 발견되는 마치 신분증과 같은 아이템을 장착하고 있었다. 바로 선캡이었다. 아줌마는 항상 다른 아줌마와 함께 수다를 떨거나 불평을 늘어놓거나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는다. 아줌마들은 아줌마들끼리 서로 의사가 되어준다." p.125
콜롬비아인의 시각에서 본 전형적인 한국의 "아줌마"에 대한 정의다. "자신들만의 차림새와 욕설,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 아줌마로서의 자격"이라는 부분에서 특히 웃음이 나왔다. 외국인의 시각에서 이처럼 한국의 아줌마에 대해서 낱낱이 꿰고 있다니! 물론, 요즘 아줌마도 아줌마 나름이고 도시나 농촌에서의 모습 역시 다르지만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토마토는 과일이다. 토마토는 과일이다. 토마토는 과일이다.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는다는 건 사실, 상추와 함께 딸기나 귤껍질을 넣는 말도 안 되는 요리법에서나 할 짓이다. 신세계 백화점의 식품 코너에서는 토마토 아이스크림을 판다. 그러니 나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 이 나라에서 토마토는 과일이다." p.190
"토마토는 과일이다."는 멘트가 세번 이상 반복될 때 정말 빵 터졌다. 토마토를 샐러드에 넣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도 새로운 일도 아닌데,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이게 이상할 수도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나라마다,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일 수 있다. 한국은 콜롬비아와 14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에게 모국은 거대한 평온을 안겨주는 대신에 거리를 두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그 나라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받아들여야 한다. "나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작가의 멘트가 재미있다. 토마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비장하다.
"수정은 부모님 집이 이사하게 되어 이를 돕기 위해 이틀 정도 일찍 내려가 있었다. 어제 통화를 했는데, 이사할 때 짧은 의식을 치렀다며 신난 목소리로 얘기해주었다. 모든 이삿짐은 트럭으로 나르고 커다란 헬멧처럼 생긴 밥솥만 따로 챙긴다. 수정과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무릅에 밥솥을 올려놓은 뒤 기사에게 이사 갈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기 전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달라고 얘기한다. 그다음에는 아파트에 발을 들려놓기 전에 현관에 소금을 뿌린다. 밥솥과 소금은 재물을 상징한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미신을 많이 믿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인 것 같다. 고관과 재벌들에서부터 주부와 어부까지,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누군가가 대신 확신해주기를 바란다." p.198
위의 미신을 들은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잘 믿지 않는 편이다. 예전 이사 때 이미 모든 짐을 다 싼 후에 전해 들은 밥솥, 다시 빼기엔 이미 늦어서 그냥 이사를 갔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어른들의 말씀이나 예로부터 전해내려 오는 풍습을 따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너무 맹신하면 좋지 않다. "한국 사람은, 어떤 일을 행하기 전에 누군가가 대신 확신해주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말에 굉장히 크게 와닿았다. 점을 보러 가는 것, 미신, 이 모든 것이 스스로의 결정이 아니라 타인에게 맡기는 행위다. 중요한 일은 더욱 신중하게, 스스로 결정을 내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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