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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 (루이스 세풀베다, 엄지영 옮김)도서 리뷰 2024. 7. 11. 07:06
FEALAC RUN 독서마라톤 다섯 번째 나라는 "칠레"이다.
사실, 그간 칠레 작가의 작품을 본 적이 없다.
독서마라톤을 통해 그동안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여러 나라들의 책을 접하게 되니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만 32만 부가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하니 더욱 궁금했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났다. 피노체트가 정권을 장악하자 그는 당시 많은 칠레 지식인들이 그러했듯 오직 목숨을 잃지 않기 위해 망명해야 했다. 수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환경 운동을 펼치기도 했는데, 소설 뿐만 아니라 철학 동화,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로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왔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2015)는 세풀베다의 네 번째 창작 동화로,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인 마푸체족 사람들이 기르던 개 아프마우의 이야기다.
어느 날 마푸체족 사람들이 살던 터전에 낯선 외지인들이 침입해 와서 강제로 그 땅을 빼앗아 가고, 그들의 손에 억지로 붙들려 간 아프마우가 옛 주인들과 이별하게 된 후의 일들을 담고 있다.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마푸체족 사람들과 그들의 충직한 개 아프마우와의 우정을 통해, 진실한 우정과 연대의 의미, 자연에 대한 사랑을 전하는 작품이다.
▶ 출생: 1949. 10. 4. 칠레▶ 사망: 2020. 4. 16.▶ 수상:1998년 퍼블리셔스 위클리 '세계 베스트셀러 작가' 선정독일 NDR 최우수 외국인작가상1989년 스페인 티그레 후안상1969년 쿠바 카사 데 라스 아메리카스 단편상▶ 출판사 서평
어른과 아이가 함께 읽는 철학 동화!
칠레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투사이자 그린피스의 환경 운동가로서 꾸준하게 활동해 온 경력만큼,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루이스 세풀베다는 인류가 직면한 공통의 문제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들을 많이 발표해 왔다. 그러나 그는 자칫 한없이 무겁고 장황해질 수 있는 이러한 주제들을 쉽게 읽히는 경쾌한 플롯 속에 효과적으로 녹여 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재능은 동화에서 크게 빛을 발한다. 2016년에 헤밍웨이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안겨 주는 그의 도오하들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잃어버린 땅,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불러주던 자신의 이름을 찾아 나서는,
아프마우의 가슴 먹먹한 여정...
▶ 꿈 많은 작가
"그러니까 라콘, 즉 죽음의 달콤한 유혹에 굴복하지 않고, 몬웬, 즉 삶에 대한 강한 충직함을 보여 주었다는 거지. 그래서 우리는 이 녀석을 우리말로 충직하다는 뜻을 지닌 아프마우라고 부르기로 했다네." p37
예전부터 '개'는 충직함의 대명사다. 자신을 희생해서 주인의 목숨을 구하거나 잃어버렸던 개가 다시 주인을 찾아온 이야기들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이 책은 이름 그대로 충직함을 뜻하는 '아프마우'의 관점에서 쓴 이야기다.
"윙카들은 이상한 습관에 매여 살아갈 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조금도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 가령 빵을 자를 때, 그들은 경건한 마음을 품지도, 소중한 양식을 주신 응구네마푸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쇳덩이로 된 괴물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 자리를 지켜 온 숲을 통째로 베어 낼 때조차, 그들을 레무의 고통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자신들이 저지른 만행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 p60
스스로 충만해지는 지름길은 날마다, 순간마다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평소 우리는 감사함을 잘 느끼지 못한다. 혹자는 걷지 못했던 사람이 어느 날 일어서서 걸어 다니는 게 기적이 아니라, 사지 멀쩡하게 매일같이 걷고 있는 사람들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 조금도 고마운 마음을 느끼지 못하는 '윙카들'은 바로 우리 '인간들'을 대변한다.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훼손하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작은 것 하나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혹시라도 자연을 훼손하게 된다면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공동체적 삶을 위한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이 총을 쏘면 나는 재빨리 땅에 떨어진 새를 찾으러 뛰어야 했다. 총에 맞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새들을 찾으면, 나는 그들에게 신음하듯이 말했다. 「부엉이 야르켄아, 나를 용서해줘.」 「미안해, 개똥지빠귀 윌키야. 부디 날 용서해 줘.」 「나를 용서해다오, 자고새 시요야.」 · · · 그러곤 그들에게 더이상의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날카로운 송곳니로 목뼈를 부러뜨렸다." p.64
날아다니는 것이면 뭐든 죽이려고 하는 윙카들, 즉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을 대신해 개가 일일이 용서를 구하는 부분이 뭔가 아이러니했다. 잘못을 행하고도 그것이 죄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들과 죽어가는 새들을 배려하는 개, 아프마우의 모습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더 이상의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오히려 빨리 죽여야만 하는 심정이 어땠을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강을 건넌다. 상처에 차가운 물이 닿자 통증이 다소 가라앉는 듯하다. 그러나 강 건너편에 이르자, 내게 남은 생명의 시간이 가슴에서 방울져 계속 떨어져 내린다." p88
'생명의 시간이 가슴에서 방울져 떨어져 내린다'라는 표현이 참 인상적이다. 문학적이다. 원래 살던 터전에서 끌려 나와 오랫동안 고통 속에서 살다가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되는 모습이 씁쓸하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아프마우가 <눈>이 아닌, <코>와 <냄새>를 통해 인간의 세계를 지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각은 인간의 소유 및 정체성 관념의 감각적 기초를 이루고 있는 반면, 후각은 공유된 세계, 즉 공동체적 원리에 내재된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아프마우는 인간을 코로 지각한다." p102
동물 중에서도 특히 '개'이기에 더욱 후각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후각이 '공유된 세계', '공동체적 원리'에 내재된 감각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게 새로운 발견이었다.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그 지독한 <두려움의 냄새>는 생명의 원칙을 저버리고 스스로를 자연과 대립하는 존재로 규정한 인간에게서 풍기는 적대와 소외의 악취이다. 자연의 리듬을 잃어버린 ㅡ 혹은 잊어버린 ㅡ 인간은 자기만의 세계속에 갇힌 채, 파편화된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말았다." p.103
이 책은 '개'의 시간으로 쓰였기에 냄새, 즉 후각에 초점을 많이 두었다. 작품 속에서 반복되는 두려움의 냄새는 바로 '생명의 원칙을 저버리고 자연과 대립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악취이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닐진대, 우리는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자연에 정말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지 말고 진지하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 이야기」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 즉 미래(未來)를 향해, 부당한 차별과 폭력이 없고 모두가 공동체적 질서와 리듬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넘실거리는 감각과 욕망의 축제일지도 모른다. · · · 우리가 비록 좌절하고 실패하더라도 앞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저나는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지킨> 아프마우처럼 자연과 생명의 원칙을 일관되게 지켜 나간다면, 세계는 참된 욕망과 꿈이 빚어내는 ㅡ 하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ㅡ 실험과 변환의 장이 될 것이고, 마침내 미래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두의 것이 될 것이다." p.107
공동체적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타인과, 더 큰 의미로는 사회적인 관계 맺음으로 살아간다. 그 연결고리가 사라진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이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당한 차별과 폭력이 없는 공동체적 질서를 지켜야 한다. 대자연과 생명의 원칙을 통해 공동체적 삶을 이야기했기에 특히 와닿았다.
이 책은 철저하게 개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그러면서 '왜 꼭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어야 하는지' 묻는다. 어떠한 까닭으로 지구상에서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야 할 모든 생명체가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는지 계속해서 의문을 던진다. 작가는 결국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이 오늘날의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십여 년 가까이 개를 키우면서 철저하게 개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도 자문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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